연우, 장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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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하는 공기2017. 10. 31. 20:37

글과 마주할때는 좀 더 솔직했으면 좋겠다.

결국에 내 과업인데, 무엇도 귀찮다 싫다 유보하는 일은 결국에 대책없는 회피에 불과하다. 

선택한 길이 생각보다 진심으로 순탄치 않다. 

편했으려고 했다면, 전이 훨씬 더 고민이 없었다. 

그만큼 고민할 거리도 걱정도 없어서 불만이었고, 스스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귀찮으니까

라는 말에 숨어서 작아지는 자신이 있었다. 


더 하고 싶고, 더 할게 있어서 여기 왔는데

더 하고 싶은 힘이 안나고, 

더 할게 있는데도 꾸에에에엥 -_- 이런 표정인건


배반이고 모순이다. 


1. 어색하다. 힘들다. 당황스럽다. 그들도 그럴 것이다. 난 아직 그들을 모르고, 그들도 아직 날 모른다. 

2. 배워야 한다. 공부할 것이다. 공부가 그냥오지 않는다. 자신을 더 단련하는 것에서 온다. 좀 진지해져야겠다. 

3. 할수 있는데, 또 계속 보면 되는건데 아직 익숙치 않아서인것이다. 한번이 어렵지 한번 떼고 나면 그 다음은 괜찮은 것이다. 

4. 적응한다. 통증은 현재 느끼는 그대로이지만.., 

5. 아니어도 좋다. 하지만 종지부는 찍고 가고싶다. 자리가 편해서, 연봉이 좋아서가 아니다. 이 산을 넘어야 시원한 맥주 한잔 더 할 수 있을것같다.

6.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른다 할지언정 그 매집은 마련해놔야하지 않나 싶다. 모른단 방패로 안한것이 습관이 되어선 안된다. 


독해졌음 좋겠다. 

또 똑똑해졌으면 좋겠다. 

어설프기보단 전문가 다워지면 좋겠다. 


갑자기 이 기억이 난다. 


영어 단어중에서 april을 잊지 않는다. 무식해서 솔직했던, 결국에 알면 된다 생각하고 무식 무짜 앞세워서 열심히 공부했던 그때가 생각난다. 

괭장히 힘들고, 하루하루 죽을 산 같았지만 넘고 난 다음 취했던 휴식은 달았다. 


나는 이 산을 넘고, 차를 몰고 여행 다닐거다. 

나는 이 경험을 통해 더 많은 행동력과 집요함을 가질거다. 


단단한 내가 되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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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란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것이다. 

사람은 욕구에 의해 느끼고, 슬퍼하고, 행복해하며, 좌절하고, 으시댄다. 


욕구는 사람을 불만족스럽게 한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어떻게 하든 만족 친화적으로 나아가려고 하는데, 그 와중에 불편한 현재 상황들이, 끊임없이 어쩌면 욕구하지 않았다면 없었을 불편한 문제들을 계속해서 지적해 간다. 


욕구란, 절대적인 것이 아닌 나와 타자 사이에 상대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난 무얼 욕구하기에 이렇게 잔뜩 화가 나고 불안한 채, 삶을 살아가나 싶다.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고, 홈페이지를 할까 아니면 블로그를 할까 우왕 좌왕 하며 작년 제주도 여행길이 눈에 들어왔다. 

행복했던 기억이 마음속에 있고, 잠시 기분이 좋아졌다. 아침을 들었다. 효리네 민박집을 보며 또 다시 제주를 생각하며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집을 나서 회사를 가려는데, 거의 창고에 가까운 내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데,새벽에 온 비때문에 물이 역류했다. 

그래서 세탁기 옆 감자는 다 젖고, 알수 없는 오물들이 흘러 올라왔다. 


기분이 참 좋지 않았다. 

마음은 이미 억만장자를 벌고 있는데, 그것을 욕구하고 있는데, 다달이 월세삯 45만원에 변변찮은 살림에, 내 연인을 보면 미안해서 화도 나고,

내 자신에게는 한심하다는듯 내 눈을 치켜세운다. 


삶은 시작됐고, 늘 맑았음 좋겠다. 


하지만 되지 않는다. 이 조차 욕구하는건가-


단순히 욕구하면 와신상담을 하든, 아니면 몸 부숴지듯 적극적으로 벗어나려 노력해야하는데, 

어영띠영한 내 태도에 화가 나는 듯하다. 


욕구가, 그 더러운 욕구가 있어서 꼭 이루고 싶다면, 몸 아끼지 말고 집중하고 나아갔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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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jsp programming 수업을 들으러 갔다. 

처음 이 수업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프로그래밍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과 문과순이가 태어나 처음 접했던 낯선 언어가 자바였기에, 

개발자란 타이틀로 앉아있는 이 자리에 스스로 부끄러워하지 않는 '개발자'가 되고싶었다. 


이뿐만 아니라, 나는 자바 공부를 하며 개발해보고싶은 컨텐츠의 앱이 있다. 플랫폼이 앱이면 대애박 칠거같은 느낌이 들어, 자바를 잡고, jsp도 얼씨구나 또 잡고 아이구 앱개발까지 촥촥 손에 들어온다면? 싶은 마음에 시작한 나의 순수한 나의 호기심에 시작했다. 


공부야 늘 그렇듯 익숙하지 않으면 어려운 법이고, 익숙해진다고 해도, 꿈에 코드가 나와도 그게 손에 잡히겠느냔말이다. 

쉽게 말해 어렵다. 

그리고, 신기하고 늘 같은 코딩질인데, 다른 접근 방식에 신기할 뿐이다. 


나는 영어강사였기에, 회화 플러그인을 내 혀에 장착해 쏼라쏼라 영어도 잘하고 싶고, 

글을 써, 함께 같이 나누고 공감하며 지나가는 누군가에게 작지만 의미가 될 수 있는 작가도 되고 싶다.

또 앱을 만들어 내 머릿속에 상상하고 있는 그 분야의 시장성 또한  시험해보고 싶다.

적어도 시장성과 수익성이 없다 한 들, 내가 날 위한 아주 편한 나만의 앱을 만들어보더라도 도전해보고싶다. 또 

jsp programming도 잘 빼보고싶다. 




지적 호기심에 시작한 나의 일들이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날이 온다면 , 솔직히 그만큼 멋진 일이 무엇인가


아니 이렇게나 재밌고 신나는 일이 많은데, 노력 하나쯤 내 어깨에 얹혀 같이 나아가면 좀 어떨까 


고로 공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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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표류하는 공기2017. 3. 21. 13:58

사람은 숫자에 얽메인다. 

몸무게, 연봉, 집 평수, 월세, 전세, 시간, 나이. 


결국 숫자에 불과한 것들이 자신을 조여오곤 우울해져버린다. 


숫자는 인간이 물질세계를 구분하고, 머리 속에 용이하게 정리하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에 불과한데, 

숫자에 울고 웃고, 죽고 사는 모습이 나에게도 또 모두에게도 보인다. 


연봉테이블에 날 맞춰 나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지 말며, 

집 평수에 맞춰 자신을 비관하거나, 우쭐해하지 말자. 


그 숫자를 모두 내려놓은 알맹이인 나를 발견하고 찾아가자. 


이 귀한 삶에서 감히 숫자 따위에 내 혼을 갉아먹고 옭매지 말자. 


오늘부터 외쳐보자 


연봉 테이블은 숫자일뿐이다. 

내 나이가 어때서! 날 숫자로 구속하지마 

내 반지하 집이 어때서 , 괄시하지마 태양아 빛좀 줘 

월세 45만원 수도세 2만원아 잘가, 넌 그래도 떠나는 돈아 아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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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나를 이끌어 가는지 혹은 내가 나의 시간을 이끌어 가는지 고민했을때 답은 명확했다. 

지금은 시간이 나를 변화없는 같은 날로 이끌어가기만 했다. 

연봉, 몸무게, 나이, 생각의 수치, 내 삶의 행복수치. 

시간을 시간대로, 숫자를 있는 숫자 그대로 이끌어갈 뿐 그 어떤 것도 변함이 없이 일관적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꿈꾸는 삶은 지금 이것이 아니므로 내 목표를 견고히 잡고 거꾸로 지금을 이끌어가겠다. 


나는 지금 아무것도 안하고 있음과 진배없다. 


내 나이 마흔이 되면, 나는 교외에 혹은 지방에 내려가 주차할 공간이 있는 100평 남짓한 집이 필요하다. 

차도 있고, 내 연인과 조용히 모닥모닥 아른아른히 공기를 마실 창도 필요하다. 


아마도 그때에는 창작을 하고 싶다. 

감히 예술가라 불리울 자신은 없지만 내 생각에 가장 한량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직업 바로 "작가"다. 


컨텐츠에 대한 돈을 먹고 살며, 비정기적으로는 강의도 하고, 정기적으로는 소일거리로 아이들 가르치기도 하고,


기획전이랍시고 여행도 다니는 그런 삶을 꿈꾼다. 

내꿈이 불명확해지기 전에 굳혀져야겠다. 


그를 위한 노력을 해야하는데, 초, 중, 후반 끊어서 예상되는 수익과 그 수익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가 필요하다. 

목적을 위한 이끌어감이 지금 절실하다 . 


간절함은 나를 바꿀 것이다. 버리고 비우고 집중하고 , 자신을 한번 믿어보자. 



늙은엄마의 문자

문자에 익숙치 않은 엄마가 점심 시간 되기 전에 문자를 보내주셨다. 
엄마도 늘 그렇듯 자연스럽게, 가게에 출근하여 앉아 계신 그 자리에 앉아 일상으로 돌아가셨을텐데 
어제의 나의 흔적을 보시곤. 어제의 우리의 대화와 어제 그 자리에 두고 온 의미들을 생각해보셨을 것이다.
애교많고, 사고 뭉치인 막내 딸이, 이제는 세상의 자극에도 눈물도 쉽게 허락하지 않은 서른이 되었는데, 
이 짧은 문자 하나가 주룩 울게 한다. 

나는 나 이기 전에, 날 너무나도 사랑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왔던 나임을 알게 한다. 

칠순에 가까운 엄마가 늙은 딸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해준 이 일이 앞으로 또 언제 올지 확신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불안과 현재의 충실함을 다짐하게 한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어제 짧게 잡아본 엄마 손이 또 그립다.









사무실에서 일을하다가 알약알리미에서 뜨는 팝업에 무심결에 클릭하게 됐다. 배너는 "예식장에 사는 하은이 남들처럼 평범한 집에서 살고 싶어요" 였다. 뭐지? 하고 클릭했다가 보니, 폐허가 된 예식장에 세멘바닥에 장판을 깔고, 씻는 것도 변변치 못한 곳에서 바퀴벌레와 쥐들이 많던 그런 곳에서 사는 아홉살 난 여자아이 얘기였다. 게다가 몸이 아파 코피를 쏟던 어린 숙녀. 


그걸 보다 순간 나의 십대가 생각났다. 내가 살던 강원도는 2002년 태풍 루사가 와서 집 뒷산이 산사태가 났다. 산도 무너지고 집도 무너지고, 집에 남았던 내 소중한 기억과 추억마저 없어졌다. 망연 자실하게 울었던 날이 있다. 산사태가 나서, 따듯했던 내 방과 거실, 마루의 경계가 한 걸음 걸으면 구분될만큼 집의 벽은 무릎보다 낮아졌고, 모든 가구와 가전제품과 당장 내일 학교를 가야하는데 교복 마져 나무와 흙에 범벅이 되어 못쓰게 됐던 그 날이 생각났다. 


막연하고 눈물만 나고, 되려 너무 힘들어서 웃음만 났던 그 가을이 생각났다. 


절실하게 나는 돈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어린 마음에 돈이 아니면 이 집을 더이상 세울 수 없을거라 생각했지만 고작 열여섯 게다가 열등생이라 공부도 못하는게 나중에 돈은 어테 버노, 라고 생각하며, 하늘이 가을로 물들며 익어가는 그 날들에 내 하늘은 원망스럽고 무섭기만 했다. 


내가 살던 그 동네에 올라 하늘보며 울던 그날이 잊혀지지 않다.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올라 놀던 숲에 가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발악을 했던 그날이 잊혀질 수 가 없다. 

집을 매매하시기에 노력했고 오랜 시간이 지나 집을 어렵게 샀던 내 부모의 얼굴이 더 늙어보였던 그날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보다는 많이 좋아졌다 잘 살아왔다 생각든다. 

어렵지만 어렵게 공부해서 대학교도 왔고, 나도 "넘들처럼" 명함도 가지고 있는 직장인이 되었다. 


녹록치 않은 살림에 풍요롭지 못한 내 지갑이 있지만, 그날의 9월 1일과 같이 막막하지는 않다. 

다행히 내 가족과 부모님은 아직 잘 살아계시고, 좋은 인성으로 클 수 있도록 늘 도와주셨던 분들이 내곁에 있다. 


그래서 힘들다, 괴롭다 생각하지 말자 다시 다짐해본다. 


다짐컨데, 훗날 여유가 생겨 집도 사고, 운용할 돈이 생긴다면 꼭 교육봉사이든, 열악한 환경의 친구를 돕는 행동을 하겠다. 

그들은 그런 대접을 받아 마땅하거나 자연스러운건 전혀 없다. 인간이기에 내가 누릴 것과 당신이 누린 것은 그들도 함께 누리고 느껴야 마땅하다 생각한다. 


다짐이자 선언이다. 

고로 나는 그날 이후로 독해져 절실히 살았던것만큼, 절실하게 - 살자 . 









* 채움늘 - 늘 부족한 점 없도록 채워나가라

윤동주 시인을 처음 알게 된건, 언어 영역 공부 중 그것도 문학을 너무 좋아하지 않던 고등학교 2학년때였다. 문원각의 책을 사서, 시를 이해할 수 없으니 외워버렸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문학은 예술이지, 학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성의 마음으로 보는 것보다는 감성의 마음으로 들여다 보는 것이 마땅하다 생각했기에 시험지에서 만나 본 시들은 죄다 불편하고 언짢았다. 그러다 들어온 문학은 이상과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 였다. 


쉽게 씌어진 시는, 그 시를 쓴 남자의 고통이 또 미약함의 반성이, 또 조선의 나라의 지성인이란 부끄러움이 한대 담겨 있었다. 솔직했다. 왜인지 소주 한잔 권해주고, 괜찮다면 함께 산보를 하며 조용히 시를 읊조리고 싶었다. 그런 그의 생애를 그린 영화를 봤다. 

동주, 그는 만주 벌판에 북간도에서 태어나 - 문학을 열망하던 소년이었다. 고종 사촌 형인 송몽규와 한 동네에 살며, 빼어난 형과 함께 공부하고 문학과 혁명, 국가를 되찾고자 염원하는 진짜 '소년'이 있었다. 


문학으로 삶과 세상, 또 정세를 알고 표현하는 소년들이 거기에 있었다. 극중 선생님이 물었다, 국가가 있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 송몽규는 말한다. 국토와 국민과 주권입니다. 선생은 다시 말한다. 우리는 지금 주권이 없는데, 사상의 이상향과 체제의 분기가 있을 수가 있는가! 


가슴이 쩌렁쩌렁했다. 주권이 없는 시대, 주권을 박탈 당해 국토를 버리고 떠난 국민. 공부와 출세를 하려면, 반드시 창시개명을 해야하고, 총과 활을 피해 공부하려면 일본으로 유학을 가야만 했던 그때였다. 


그때 동주는 아마 주권도 국토도 자신과 자신의 형제를 지켜줄 국민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그래서 끔직하고 삭막한 그 곳에서 되려 현실을 직시할 날카롭고, 적극적인 노래보다는 우회적이며 절망적인 시대상을 다른 반전의 형언과 탁월한 문학적 천재성으로 짓고 노래했을지도 모른다. 


영화를 마치고,

신사 브로드 웨이 극장을 나와,  나는 담배를 피곤 달리는 외제차들과 편의점보다 많은 성형외과 간판을 보았다. 우리보다 더 젊고 곱던 나이에 청춘을, 열정을 뺴앗긴 그들이 원하던 그 조국이 맞는 걸까 - 매일 맞이하는 지금은 그들이 일구고자했던 '내일'이었을까,


그 마음을 알지 못하지만, 현시대를 사는 우리도 언젠간 묻혀 지나가게 될 것이다. 삼십년, 육십년이 지나 우리는 동주 만큼 송명규 만큼 뜨거운 청춘이 되진 못하였더라도, 부끄럽지 않은 청춘이길 바란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곰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쉽게 씌어진 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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