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그러하듯이 사람답게 살 권리
사무실에서 일을하다가 알약알리미에서 뜨는 팝업에 무심결에 클릭하게 됐다. 배너는 "예식장에 사는 하은이 남들처럼 평범한 집에서 살고 싶어요" 였다. 뭐지? 하고 클릭했다가 보니, 폐허가 된 예식장에 세멘바닥에 장판을 깔고, 씻는 것도 변변치 못한 곳에서 바퀴벌레와 쥐들이 많던 그런 곳에서 사는 아홉살 난 여자아이 얘기였다. 게다가 몸이 아파 코피를 쏟던 어린 숙녀.
그걸 보다 순간 나의 십대가 생각났다. 내가 살던 강원도는 2002년 태풍 루사가 와서 집 뒷산이 산사태가 났다. 산도 무너지고 집도 무너지고, 집에 남았던 내 소중한 기억과 추억마저 없어졌다. 망연 자실하게 울었던 날이 있다. 산사태가 나서, 따듯했던 내 방과 거실, 마루의 경계가 한 걸음 걸으면 구분될만큼 집의 벽은 무릎보다 낮아졌고, 모든 가구와 가전제품과 당장 내일 학교를 가야하는데 교복 마져 나무와 흙에 범벅이 되어 못쓰게 됐던 그 날이 생각났다.
막연하고 눈물만 나고, 되려 너무 힘들어서 웃음만 났던 그 가을이 생각났다.
절실하게 나는 돈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어린 마음에 돈이 아니면 이 집을 더이상 세울 수 없을거라 생각했지만 고작 열여섯 게다가 열등생이라 공부도 못하는게 나중에 돈은 어테 버노, 라고 생각하며, 하늘이 가을로 물들며 익어가는 그 날들에 내 하늘은 원망스럽고 무섭기만 했다.
내가 살던 그 동네에 올라 하늘보며 울던 그날이 잊혀지지 않다.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올라 놀던 숲에 가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발악을 했던 그날이 잊혀질 수 가 없다.
집을 매매하시기에 노력했고 오랜 시간이 지나 집을 어렵게 샀던 내 부모의 얼굴이 더 늙어보였던 그날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보다는 많이 좋아졌다 잘 살아왔다 생각든다.
어렵지만 어렵게 공부해서 대학교도 왔고, 나도 "넘들처럼" 명함도 가지고 있는 직장인이 되었다.
녹록치 않은 살림에 풍요롭지 못한 내 지갑이 있지만, 그날의 9월 1일과 같이 막막하지는 않다.
다행히 내 가족과 부모님은 아직 잘 살아계시고, 좋은 인성으로 클 수 있도록 늘 도와주셨던 분들이 내곁에 있다.
그래서 힘들다, 괴롭다 생각하지 말자 다시 다짐해본다.
다짐컨데, 훗날 여유가 생겨 집도 사고, 운용할 돈이 생긴다면 꼭 교육봉사이든, 열악한 환경의 친구를 돕는 행동을 하겠다.
그들은 그런 대접을 받아 마땅하거나 자연스러운건 전혀 없다. 인간이기에 내가 누릴 것과 당신이 누린 것은 그들도 함께 누리고 느껴야 마땅하다 생각한다.
다짐이자 선언이다.
고로 나는 그날 이후로 독해져 절실히 살았던것만큼, 절실하게 - 살자 .